통역 없이 상담을 할 때 보통 환자들은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 내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외국인인 나의 어법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중년남자의 입에서 유치원 아이 수준의 말이 띄엄띄엄 새어 나온다고 상상해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또한 치과 임플란트 환자들은 대체로 나이가 얼마큼은 되는 분들이기도 하다. 가는귀가 어두울 연배일 테니 말이다.
병원 내에서 내가 하는 중국어는 기껏해야 기초적인 의학용어들 위주다. 이미 상당 부분 표준화가 되어있어, 나와 얼마 정도 함께 일하고 나면 어렵지 않게 소통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를 예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상담실장이나 의사들은 이해가 빠르다. 환자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그들을 돌보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자리에서 내가 던진 말을 환자는 못 알아듣고, 스태프들이 그걸 주워서 다시 읊어주면 말이 몇 마디 나오기도 전에 금새 알아차린다는 사실이다. 내 귀에는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재생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1.
병원 문을 들어서는데 한 노신사가 대기실 소파에서 우리를 보고 일어선다. 분명 알은 체를 하려는 몸짓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성큼 다가서더니 나를 반갑게 맞아 인사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누군지 모르겠다. 샤오인도 모르는 눈치다. 이럴 때 참 난감하다. ‘나를 광고에서 본 사람인가?’ 보통 영상매체 등을 통해 같은 사람을 여러 차례 접하게 되면, 마치 서로 아는 사이인 듯한 착각에 빠진다고 하지 않는가.
다행히 노신사는 자신을 소개한다. 여러 해 전에 내게 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환자다. 그간 잘 씹고 잘 먹을 수 있게 되어 살이 많이 쪘다고 한다. 몸무게가 스무 근(10~12kg)이나 불어 종종 못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고. 그러더니 그는 대뜸 까오웬장(高院长, 고 원장) 당신은 나의 영웅이라며 엄지를 척 치켜세우는 게 아닌가. 오늘은 아내의 수술을 부탁하려고 함께 왔다는 것이다. 셋이서 함께 기념사진도 찍자고 한다.
순간 전류 한 가닥이 온몸을 관통한다.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 데 보탬이 되긴 되는구나. 감사의 말은 환자가 하는데 도리어 내가 고마워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뭉클해진 것이리라. 한국에서는 영웅이라는 단어를 주로 난세에 백성들을 구하는 사람, 이라는 위대한 뜻으로 쓴다. 이순신이나 잔다르크 같은 역사적 인물에게나 어울릴 법한 수사다.
연세어학당 출신의 재원 샤오인에 의하면 중국에서 영웅이란 단어에는 몇 가지 뜻이 있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존경하는 은인’이란 의미로 쓴 거란다. 우리보다 조금 광범위하게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여하튼 아침부터 영웅이란 소리를 다 듣고 기분이 매우 좋다. 이 맛에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표현하기 힘들 만큼 뿌듯해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수술실에 수북이 쌓여있던 차트가 이제 마지막 장이다. 오전 내내 수술을 했더니 몸도 지치고 배도 출출하다. 준비실에서 오전 마지막 환자의 술 전 사진을 보고 있는데, 샤오인이 밖에 상담환자 한 명을 더 봐달라고 한다. 이번엔 아주머니 한 분이 인사를 하는데 낯이 익다. 얼마 전 내게 수술 받으신 분이다. 화려한 터번이나 비니 같은 걸로 자신을 잘 꾸미는 멋쟁이 환자라, 대번에 알아봤다. 그녀는 휠체어에 의지한 남편을 소개하며 수술 잘 부탁한다고 한다. 거동이 이렇게 불편한데 밥이라도 잘 먹게 해주고 싶다고.
오! 감동이다. 좀 전까지의 피로는 간 데 없고, 눈이 번쩍 뜨이고 힘이 불끈 솟는다. 오늘은 감동의 연속이다. 내가 이런 아름다운 현장에 함께 있다는 행운, 나라는 존재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행복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대한민국 기술보부상은 반드시 수술로 보답하리라는 사명감에 슬그머니 주먹이 쥐어졌다.
남편은 언어장애까지 와있다. 몇 년 전 당한 뇌졸중으로 아주머니를 통해야만 겨우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런데 아뿔싸! 술 전 루틴에서 혈압과 혈당 수치가 당일 수술이 불가능할 만큼 높게 나온다.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부부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긴장해서 그렇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다” 하며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킨다. “산보를 하면 긴장도 줄고 혈압 혈당도 떨어질 거”라 자신한다. 그러곤 남편을 부축해 쉴 새 없이 걷고 또 걷게 한다. ‘그런다고 쉽게 수치가 좋아질 리 없는데.’ 두 시간 후 재검이다. 혹시나 해서 나도 은근히 기대해봤지만 역시였다. 부부는 그제서야 당일 수술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요행을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아쉬웠다. 가능하면 오늘 꼭 해드리고 싶었는데. 남편에 대한 사랑을 임플란트로 표현한 아내의 예쁜 마음. 천사의 사랑을 육신으로나마 받아들이려는 남편의 은혜로운 마음. 부부의 사랑이 한 사람의 몸 안에서 꽃필 수 있게, 먹고 말하고 숨쉬는 일상 가운데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게 나는 수술로써 측면 지원해야지 하는 나의 바람과 다짐. 모두 다 무산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부부보다 나의 아쉬움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한 달이 흘렀다. 아침부터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휠체어 부부다. 오늘 수술을 받기 위해 그간 열심히 혈압과 혈당을 조절했다고 한다. 술 전 루틴에서 수치들이 과연 허용범위 이내다. 우리는 바로 수술 채비에 들어갔다. 술 중 환자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아주머니를 수술실에 함께 모셨다. 수술실의 소독과 감염방지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한 것이다. 그녀는 수술하는 시종일관 우리와 함께했다.
술 중 말이 가는 것은 나, 통역, 환자의 순으로 비교적 원활하다. 하지만 올 때는 환자, 아주머니, 통역, 술자인 나, 이렇게 주자가 하나 더 늘어나니 소통 릴레이가 노상 번거롭다. 자연 수술이 더뎠다. 중간중간 멈춤과 주행이 반복되었지만, 두 시간에 걸친 수술은 별탈 없이 흘러갔다.
장갑을 벗는데 순간 눈두덩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둘러보니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 눈가가 젖어있다. 수술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의 눈자위도 불그스름해져 있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서 출발한 사랑이 주고 받고 도우면서 한 세트의 다자간 공감으로 완성된 것이다.
동영상 파일 하나가 가슴에 저장됐다. 사랑이라는 번역기가 비언어를 언어로 변환하는 마법의 이야기다. 사랑이 있으면 언어의 장벽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아름다운 영상이다. 수술실을 배경으로 한 휠체어 부부의 러브스토리는 혼자 있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자동재생 되고 있다. 혼자 보기 아까워 나는 아내와 딸아이에게도 나눠주었다.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보다 더 아름답고 더 큰 감동을 주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인류사에 남을 예술작품도, 자연의 절경도, 우주의 신비한 영상도. 그 어떠한 경외감도 사람을 울리지는 못하니까.
2.
나라마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그들 나름의 언어가 있다. 한국은 단일 민족국가이지만 지역별로 여러 개의 방언이 존재한다. 대체로 도(道)마다 있고 그 하부 지역단위로도 몇 개씩은 있다. 그래도 한국은 제주도를 제외하면 사투리 문제로 소통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분단된 채 살고 있는 북한과도 그렇고, 어느덧 중국인이 돼버린 조선족 그들과도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도 지역마다 방언이 있다. 크게 나누면 7종이고 하위범주로는 129종에 달한다고 한다. 7대 분류로 보면 10억이 넘는 인구가 사용한다는 북방방언(北方方言, 베이징 만다린)을 필두로、오방언(吴方言, 상하이어), 민방언(闽方言, 푸젠 타이완어)、월방언(粤方言, 홍콩광동어)、감방언(赣方言, 장시어), 객가방언(客家方言, 토속 광동어)、상방언(湘方言, 후난어)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방언은 서로를 악마의 말이라 헐뜯을 만큼 소통이 어렵다. 중국 표준어인 푸통화(普通话, 보통어)와 방언들 사이의 간극은 우리의 표준어와 제주도 사투리 사이의 거리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출장을 다니다 보면 이상한 말로 대화를 나누거나 통화하는 여행객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내 귀에는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쪽 말 같아서 중국인 동반자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들도 모른단다. 대화 내용은커녕 어느 지역 사투리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고는 그건 말이 방언이지 차라리 외국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중국은 중국이라는 이름만 하나로 쓰지,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도저히 획일적일 수 없는 나라다. 그들의 유구한 역사, 공식적으로 인정된 숫자만 56개라는 민족의 다양성, 드넓은 영토와 곳곳에 존재하는 지리적 고립성, 그로 인한 왕래의 어려움, 언어의 호환 및 소통 가능성 따위를 고려해볼 때 중국의 대다수 방언은 외국어나 다름없다.
중국인들 스스로도 시인하는 부분이다. 말은 있으되 글이 없는 방언도 적지 않다. 특히 얼마큼 연세가 든 인민들은 중국 정부가 푸통화를 보급하기 이전에 자라났기에 자기 고향 말밖에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어찌 보면 서로 다른 외국어끼리이니, 소통이 안 되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중국 민영 의료기관의 90% 가량이 푸졘성(복건성, 福建省) 사람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한다. 쑤저우(소주, 苏州) K치과의 관리자는 류종(유 사장, 刘总)이라는 사람으로, 사모님이 푸졘사람이다. 후난(湖南, 호남)사람인 류종이 K의료그룹에서 일하다 오너의 여동생과 눈이 맞아 결혼한 이야기는 업계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신화다.
푸젠인들은 좀처럼 외부인들과 결혼하지 않는 게 관습이기 때문이리라. 그는 K 본사에서 파견한 수많은 다국적 임플란트 전문가들을 하나같이 마다하고, 대신 개인적으로 내게 접촉해와 함께 일하게 된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하루는 류종이 장모님의 수술을 부탁한다. K에는 임플란트를 잘하는 의사가 천지인데 내게 부탁을 해온 거다. 감사하다. 상담을 진행할 때 보니까 그녀도 푸통화를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의 고향 푸젠의 사투리는 중국 내에서도 베이징어와 상하이어 다음 자리를 차지할 만큼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다. 반면에 소문난 불소통 방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자마저 없어 외국어 취급을 받기 십상인 사투리다. 푸젠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같은 중국인이라도 정말 한두 마디도 못 알아 듣는다.
예상했던 대로 수술실에는 두 명의 통역이 배치되어 있다. 내가 한국어로 말하면 샤오인이 푸통화로 번역하고, 그걸 장모님의 손주가 받아서 다시 타이완과 푸졘지역의 민방언 중 하나인 민난화(闽南话, 민남어)로 바꾸는 릴레이가 진행된다. 그래도 이 방향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 내가 뱉은 한국말을 손주가 받는 순간 나는 액션에 옮기기 시작하니 수술 또한 큰 무리 없이 진행된다.
반대로 환자가 할 말이 있을 경우에는 수술이 중단되기 일쑤다. 한국말이 내 귀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리고, 때로 다시 민난화로 되돌려주기까지 해야 한다. 게다가 그녀는,
“까오웬장 당신이 직접 수술하는 게 맞냐?”
“마취는 안 할 거냐?”
“오늘 수술할 부위는 오른쪽 위다. 알고 있느냐?”
“지금 하고 있는 데가 맞냐?”
“옆 치아 건드리는 거 아니냐?”
하며 질문이 많다. 그간 그녀의 경험에 따라 형성된 치과치료에 대한 안 좋은 인상들 때문일 거라 짐작해볼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비상식적인 질문투성이다. 사위가 운영하는 병원임에도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수술을 멈추고 이걸 일일이 두 번씩 통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그것도 부족한지 장모님은 수술포 아래에서 눈을 부릅뜨고는 수시로 포의 구멍을 통해 수술 상황과 술자인 나를 감시하는 게 아닌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주 섬찟 섬찟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임플란트가 자기가 선택한 브랜드가 맞는지 식립 직전에 보여달라고도 한다. 보여준다고 알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라는데, 이때는 정말 CCTV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발 말 좀 그만하시라고. 수술 끝난 후에 녹화된 장면 다 보여드리겠다고.’ 하고 싶었다.
덕분에 수술은 비슷한 유형의 증례보다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려서야 겨우 끝이 난다. 수술이 끝나고도 한참을 짜증이 가시지 않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이해가 안 가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많고 땅덩어리가 넓어 서로를 쉽사리 믿지 않는 중국인들의 습성 탓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보다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 팀이 나누는 대화를 바로 바로 알아들을 수 없을 때 느낄 답답함과 불안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만으로도 고통스러울 텐데, 하물며 말까지 안 통하는 상황이니. 일견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수면마취나 전신마취 하에 수술을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며칠 후 나는 가위눌리는 꿈을 꾸었다. 수술대에 묶인 채 외계인들에게 둘러싸여 바둥거리고 있는 지구인이 바로 나였다.
3.
금번 출장기간 동안에는 지난(济南, 제남) 병원에 리종(李总, 이 사장)이 없다. 고향 푸젠(福建, 복건)에 갔다고 한다. 고작 며칠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외부 전문가가 오는 행사기간 동안 사장이 병원을 비우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고향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고 하는데, 무슨 큰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친 역시 병원사업을 하는, 나와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얼핏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기는 한데. 어쨌든 리종은 호우친들로 하여금 까오웬장(高院长, 고 원장)을 밀착해서 잘 보필하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병원에는 호우친(后勤, 후근)이라는 부서가 있다. 그 부서에 일하는 사람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말 그대로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병원 안팎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한다. 한국으로 치면 병원 경영지원 팀 정도 된다. 그들은 보통 병원 오너의 고향사람들이다. 해마다 춘제(春节, 음력설) 연휴 동안 푸젠에서는 취업박람회를 열고, 중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을 뽑아 데려온다. 반은 부리고 반은 키우는 셈이다. 한눈에 봐도 그들은 우리아이들 또래로밖에 안 보일 만큼 앳된 티가 풀풀 난다. 호우친은 중국 병원업계의 대표적인 흙수저들이다.
산동의 성도 지난, 그 병원의 핵심이 되는 호우친은 세 명이다. 접대 자리가 있으면 그들은 늘 리종과 함께한다. 그날 운전을 해야 하는 친구 빼고는 술도 많이 마셔야 한다. 게다가 온갖 세세한 감정노동까지 수행해야 해서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니다. ‘하오커산동(好客山东)’, 산동사람은 손님접대를 좋아하고 또 잘하기로 중국 내에서도 알아준다. 산동은 콩멍(孔孟, 공자와 맹자)의 고장답게 접대 예절이 아주 잘 짜여있다.
우선 그날 참석하는 인원에 따라 원탁에 주1 2 3 4와 빈1 2 3 4의 자리를 배정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 자리가 모자라도 안 되지만 남아서도 안 된다. 술과 요리와 주식(主食) 각각에도 먹는 순서 및 의례가 따로 있다.
내가 좋아하는 술을 예로 들자면 첫 세 잔은 주1의 주도 하에 전원이 일어나서 의무적으로 마셔야 하고, 다 마신 후에는 잔을 뒤집어 완전히 비웠음을 빈에게 내보인다. 당신을 이만큼 존중한다는 내색이다. 그렇게 3배를 연거푸 하고 대작에 들어간다. 주1과 빈1, 주2와 빈1, 주3과 빈1 이런 식이다. 그날의 주빈(主賓)인 빈1에 대한 주(主)들의 예의가 끝나면 빈2로 넘어간다. 주1과 빈2, 주2와 빈2, 주3과 빈2 다시 이렇게 간다. 간단히 설명해 이 정도다. 술만 해도 이렇게 대작하는 순서와 방법이 정교하게 짜여 있다. 콩멍 유교의 전통이 산동지역에는 제법 많이 남아있는 셈이다.
지난 병원 사람들은 나도 손님이라고 저녁은 늘 거창하게 대접하는데, 호우친은 잔심부름에 리종 눈치까지 보느라 식사자리가 늘 좌불안석이다. 술은커녕 간단한 음식도 마음 편히 못 먹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사장의 가정사 덕분이라 하긴 좀 뭐 하지만, 아무튼 그가 없어 지난에 머무는 시종일관 호우친들과는 격 없이 편히 지냈다. 심리적 거리도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오늘은 기사를 퇴근 못하게 대기시켜두어서 셋 다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단다. 식사가 시작되고 술이 서너 순배가 돌자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평소 숫기가 없어 나와 눈도 잘 못 맞추던 아이가 오늘은 제일 신이 났다. 셋 중에 목소리가 가장 우렁차다. 그를 위시해서 서로가 말을 한 마디라도 더 하겠다고 다들 아우성이다. 자기들끼리 결투라도 벌일 태세다.
아직까지 나는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절반밖에 못 알아듣는다. 그나마 내게 하는 말은 좀 알아듣는 편이긴 하다. 아무래도 외국인에게는 좀더 쉬운 말로 또박또박 이야기할 테니 그렇지 않겠는가. 나 또한 그들에게 말을 좀 천천히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듣는 편이다. 그들은 그런 내가 좋았나 보다. 무슨 말이든 하찮게 여기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주던 내가 귀했나 보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먼저 들어달라고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오더니 난장판을 만들어놓는다.
나는 눈과 귀를 잠시도 한 사람에게 고정해두지 못한다. 왼쪽 아이는 시안(西安, 서안)에서부터 이미 나를 알았다 하고, 다른 쪽 아이는 진작부터 난징(南京, 남경)에서 나를 만났다고 주장한다. 각자 자신이 까오웬장과 알고 지낸 지가 더 오래됐다고 뻐기며, 양쪽에서 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귀엽다.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난은 고요한이 출장 원년부터 다닌 곳이다. 나와 합작한 지가 십 년이 다 된 가장 오래된 병원이다. 에피소드도 제일 많아 영웅과 휠체어, 사랑니, 불시착, 베이징 등등 수많은 글의 소재가 된 기술보부상 역사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최근 아내가 아파 한국에 가 있다. 고2 올라가는 작은녀석을 혼자 돌보아야 하는 아비로서 나는 출장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 비행기를 타거나 환승을 해야 하는 등 교통편이 번거로운 도시에는 이제 출장이 꺼려진다. ‘이곳도 조만간 관계를 정리해야 하나 어쩌나?’ ‘한다면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앞으로 이 자식 같은 놈들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만 가슴이 아려온다.’
지난의 호우친들은 중국어도 어설프고 나이도 아버지 뻘인 나를 줄곧 좋게 평가해주고, 편히 대한다. 늘 외국인 전문가 가운데 으뜸이라 치켜세우곤 한다. 한편 그들은 번듯한 직장도 있고 성인도 되었으니 이제 곧 여권이 나온단다. 드디어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 으스대고, 첫 여행지는 고원장님의 나라가 될 거라 좋아한다. 그만큼 나와 대한민국에 호의적인 젊은이들이다.
술이 올라 빨개진 얼굴로 앞다투어 지지배배 지지배배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마치 내가 둥지 속에 입을 짝짝 벌리고 있는 새끼들을 내려다보는 어미 새가 된 기분이다. 벌레를 한 마리씩밖에 물어다 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통역도 없는 자리에 스물 즈음의 중국청년 셋과 오십 줄의 한국남성 하나. 중국어를 빨리 배우려면 중국인 여친이나 남친을 사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존중하게 되면, 나이와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통 또한 어려울 리 없지 않겠는가.
다음 호에는 '사랑니와 히포크라테스선서'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