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닥터스 딜레마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하여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오늘은 좋은 의사 여덟 번째 시간인데요. 지난 시간에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토론한 사례와 비슷한 실제사례로 토론한 경험을 말씀하시다가 끝났어 요.

: 그랬죠. 그 환자의 주치의가 특별히 우리 학생들에게 환자를 볼 수 있게 해줬어요. 세 살도 채 안된 어린 아이였어요, 아기였죠, 아기. 바깥세상과 자기몸이 여러 튜브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깊이 잠들어 있었지요. 호흡은 자가호흡을 하는데 아무 것에도 반응이 없는 상태였어요.

: 예에.

: 그렇게 몇 달을 있었다고 했어요. 의사 말이 아이상태는 서서히 나빠지고 있다고 했어요. 회복가망도 전혀 없다고 했고요. 직전에 하던 토론은 열의에 차 있었는데 그런 광경을 본 학생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들 침묵으로 일관했어요.

: 왜 안 그러겠어요? 비극의 현장 앞에서는 논쟁이 다 무의미해지니까요.

: 확신에 차서 의견이 양분되어 있었는데 자신감은 온데 간데없이 너무 놀라더군요. 그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에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요. 그러다가 이 현실에 도전하려고 하는 눈치들을 보였죠.

: 아, 근데, 어떻게요?

: 어떻게 달리 방법이 없는지 질문 했어요. 비상구가 없다는 의학적 근거만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죠. 서서히 받아들이려고 하더군요. 연명의료를 철회하여야 한다고 냉정하게 결과주의적인 입장을 주장하던 학생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었어요. 잠든 아이가 보여주는 평화로운 모습에, 그 인간성에,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많이 놀랐지요. 어떤학생은 다시는 절대로 누군가를 식물상태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치료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이제 그렇게 하는 게 맞는건지 자신없다고 했어요.

: 예에. 그러면 계속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던 학생들은요?

: 이제 마지못해 받아들이게 된 그 희망없는 상황에 마주해서 어찌할 줄을 몰 랐죠.

: 네에. 학생들 반응이 당연해요 선생님.

: 늘 생명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던 학생이 그 아이가 붙들고 있는 그 생명의 상태가 너무도 빈약하고 너무도 제한적이어서 가슴 아프다고 하면서 더 이상 어느 쪽의 선택에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 네에.

: 그런 일이 있은 후 다시 강의실에서 만났을 때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개중에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겠다는 학생들이 있긴 했는데 원래 입장을 반대 입장으로 바꾸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 예, 선생님. 치료중단을 주장하던 학생들 중에 입장을 선택하지 못하겠다는 경우와 치료계속을 주장하는 경우로 많이 전향했다는 말씀이죠? 반대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 그렇죠. 자, 이제 생각해보세요. 사실 그렇게 입장에 변화가 생기기 전후에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보가 추가된 것은 없어요.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으며 보건학 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