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Doctor's Dilemma>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해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강 : ‘좋은 의사’ 열네 번째 시간입니다. 환자가 돼본 의사들의 기록과 그 증언이 환자가 됨이나 환자와 연관된 것들을 보는 데에 가장 낫지 않느냔 말씀을 하시던 중이셨는데요. 우리나라도 그렇고 그런 기록들이 속속 나오는 것 같아요.
샘 : 그래요. 환자로서의 경험을 보고하는 것들이죠. 진료를 하는 쪽에 있다가 받는 쪽에 있었던 경험으로 더 좋은 의사가 됐다는 분들이 많아요.
강 : 예에, 선생님.
샘 : 환자가 돼본 경험을 통해서 진료에 대해 모르던 지식을 더 알게 됐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들이 새로 얻은 것은 환자로서 어떤 감정과 기분을 경험하는지에 대한 감각이라고 해요. 두려움이나 혼란, 분노, 그리고 희망 같은.
강 : 예. 선생님도 책에 적으셨듯이 아픈 게 어떤 것인지, 진료를 받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그런 깊은 인식은 간접적으로는 사실 얻기 어렵잖아요.
샘 : 학생들에게 이야기라도 강의를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그렇죠.
강 : 의사 입장과 환자 입장을 다 경험하신 분의 이야기는 또 완전히 다를 것 같아요.
샘 : 당연히 그렇겠지요!
강 : 미국에서 911 사태 때 여동생을 잃은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우울증 경험으로 시작하는 책을 본 적 있어요. 자신이 우울증 환자를 진료하다가 직접 우울증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 후에 그 분이 미국 전역에서 수십여 명의 환자경험 의사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해서 의사가 환자가 돼본 경험을 엮은 책이었어요. 의사가 된 환자와 의사동료와 의료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였죠.
샘 : 그렇군요. 자, 이제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런 생각을 해봐요. 의사 선생님이 병실로 잠깐 들러서 들여다봐주는 시간을 마냥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긴 시간이 이어지는 경험이요. 우리가 학생들에게 이 경험을 이야기로 전달한다고 해봐요. 입원환자가 되면 엄청 지루하다고 하겠죠.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건 뭐죠? 그 사실을 알아두기를 그리고 그 사실이 또 환자진료나 환자관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있기를 기대하겠죠?
강 : 흐흐. 네. 실감은 전혀 안 나고 지루한 강의가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샘 : 이런 것도 생각해봐요. 수술 받은 후에 환자가 병실에서 회복을 기다리는 환자 입장이 또 얼마나 주눅 들고 우울할지를요. 이렇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면서 또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강 : 환자가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해 줘야죠. 환자가 진짜로 겪는 것을요.
샘 : 그런데 강의만으로 효과가 그다지 있겠느냐는 겁니다. 다니던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그로 인한 여파에 대한 걱정으로 생기는 깊은 불안을 환자가 겪고 있는데 의사가 회복하는 데에는 워낙 시간이 좀 걸리니까 아무 걱정 말고 쉬면서 기다리시자고 말을 툭 던진다고 생각을 해봐요. 이 뿐만이 아니죠. 질병경험에는.
강 : 예에, 흠 그러니까 말씀의 결론은 강의실에서 말로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교육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 말씀이시네요.
